리뷰 2015. 11. 28. 23:36

<타이포잔치 2013> (2013)

문화역서울 284에서 진행중인 '타이포잔치 2013'에 대한 간단한(?) 후기를 적어보기로 했다. 블로그에 전시 후기를 올리는 것은 처음인데, 두 차례나 관람한만큼 JPEG 몇 장으로 남기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였던 9월 4일에 전시는 거의 다 본 셈이었고, 9월 14일의 두 번째는 비평가 임근준 선생님의 강연도 듣고, 첫 번째 관람 이후 알게 된 정보들에 따라 몇 가지 작업들을 다시 보기 위한 것이었다.

 

 

유윤석 디자이너의 전시 아이덴티티 디자인. 리플렛. 전시 안내 사인

  
 

전시를 보기 전에 먼저 접한 웹사이트는 '김형재x홍은주'라는 이름을 바로 떠올릴 수 있는 디자인으로, 이번 '타이포잔치'의 분위기가 지난 두 전시와는 상당히 다를 것임을 알 수 있게 했다. 물론 최성민 선생님이 총감독을 맡게 된 것부터 큰 변화가 예견됐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구현될 지는 약간 의문이었는데, 웹사이트를 보니 확실히 실감되었다. '슈퍼텍스트'라는 주제어의 어감이나 웹사이트 좌측 상단의 구름 애니메이션에서 풍기는 '발랄함'이 주는 첫 인상은, 사실 전시된 작업들 전체를 실질적으로 아우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대중적인 전시공간인 문화역서울 284를 의식한 일종의 포장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이는 소문자 't'가 만화풍의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로켓처럼 솟아오르는 전시의 아이덴티티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타이포그래피 전시를 일반 대중이 즐기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기에 분야 종사자들로 한정되지 않는 관객을 상정하는 '비엔날레'라는 것이 가능한가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이런 장치들이 일반 관객 동원을 위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시의 주요 참가자들이나 전시 작품들을 기꺼이 즐길만한 디자이너 관객의 취향에도 무리없이 부합한다는 점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영리한 해결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난 시점에 드는 생각은 이것이 굳이 이 전시를 찾지 않아도 되었을 관객층에게 '낚시'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전시 관람 중에 그러한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와서 노골적으로 불평을 터뜨리는 관객들을 꽤 볼 수 있었다. 그런 불운한 관객들 중의 대다수는 넥타이 부대같은 한 눈에도 이질적인 관객들이 아니라, 전형적인 타이포그래피 전시 작품들을 기대하고 온 듯한 시각디자인 전공 대학생들로 보였다. 물론 이는 전시 기획/제작진들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될 일은 아니다.   

     전시 규모는 타이포그래피 전시로서는 큰 편으로, 1층과 2층에 걸쳐 40여 명 디자이너의 작품들이 네 개의 테마로 전시되었다. 네 개의 테마는 글자를 소재로 다양한 미술적 실험을 전개하는 '언어예술로서 타이포그래피', 북디자인을 기반으로 내용과 형식에 대한 독특한 시도들을 전개한 '독서의 형태', 문고본 표지 디자인을 소개하는 '커버, 스토리', 그리고 작가와 그래픽 디자이너의 협업으로 서울스퀘어에 상영하는 미디어 파사드 '무중력 글쓰기'이다. 이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언어예술로서 타이포그래피'로, 일반적인 전시 형식에 어울리는 작품들은 대부분 여기에 속해 있다.  

     개인적으로는 전시의 테마 이상으로 뚜렷한 인상을 남겼던 것이 각 작품들이 소개되는 맥락이었다. 이번 전시의 작품 구성에 대해 각자 맡은 배역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는 어렵지 않게 파악이 가능하다. 입구에 전시된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같은 작품이 아주 노골적인 예이다. 

 

 

  

언어예술로서 타이포그래피 (1층)

로비의 주인공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지만, 더 눈이 갔던 것은 한 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농담의 방식>이었다. 복고적인 한글 레터링 작업들이 유명한 김기조 디자이너이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간단한 작업과 출력을 위한 테이블을 마련하고 때때로 디자이너가 방문해 그것을 사용하는 설치,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였다. 그의 기존 작업들과 시각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은 거의 없지만, 출력되어 미끄러져 나오는 메시지들이 그려지는 방식이나 그 내용도 그렇고, 작업 중인 모습도 모두 '냉소적인 농담'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의 포스터들이 전시된 벽면을 마주하는 상황과 유사한 뉘앙스를 전달한다. 디자이너가 그리 자주 머무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방문했던 두 번 모두 퍼포먼스를 볼 수 있었다. 

 

  

김기조 <농담의 방식>

 

 

서체 디자인이 전시되면 서체 디자인 전문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경우, '어쩌라고'의 표정을 짓게 된다. 작업을 위해 폰트를 고르게 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감상용으로는 큰 흥미를 끌지 못하게 마련이니까. 특히 눈을 사로잡는 여러 다른 매체의 작품들 속에서 서체 디자인이 돋보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안삼열 디자이너의 <현대적 흘림>은 압도적인 부분이 있었다. 전시를 위해 추가된 노력은 대형으로 인쇄한 것 외에 별 다른 것이 없었겠지만, 완성된 서체 자체가 지니는 조형미가 대단해서 굳이 다른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많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한 동안 이 서체의 힘을 빌어 멋드러진 작업들을 내놓을 것 같다. 너무 유행할까 걱정이 될 정도다.

 

 

안삼열 <현대적 흘림>

 

 

이 전시에는 웹사이트 등을 통해 '이런 내용을 이렇게 다룬 책이 있다'라는 설명만 보고도 멋지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꽤 많았는데, 이러한 책들은 전시장에서 그 실물(의 일부)을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제대로 읽고 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루이 뤼티의 <자기 반영 지면에 관하여>도 그러한 경우였는데, 독자가 텍스트에 함몰되는 것을 의식적으로 훼방하는 듯한 지면들이 모여 이루어진 이 책은 기회가 된다면 사서 차근차근 읽어보고 싶다. (더 북소사이어티에서 판매된 적이 있으나 지금은 품절 상태)

 

 

루이 뤼티 Louis Lüthi  <자기 반영 지면에 관하여>(On the Self-Reflexive Page)

 

 

오베케(스웨덴어 발음에 충실하면 이렇게 읽지만, 이 전시 전까지 대개 '아바키'로 표기되곤 했다.)는 지적이면서도 젠 체하지 않는 발랄함이 사랑스러운 팀이다. (멤버 중 한 명인 패트릭 레이시는 학부 시절 가장 좋아했던 튜터였는데, 한 학기를 함께 했을 뿐이지만 내 머릿 속에서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흐려놓았으며, 독립출판 등의 실험적인 소규모 그래픽 디자인 작업에 매력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졸업 후 고생을 많이 하게 되긴 했다.^^) 

     오베케의 기생잡지 프로젝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는 여러 잡지나 카탈로그에 기생하며 생존해 왔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 잡지 <Graphic>과 미국의 <Graphic Design: Now in Production> 전시 도록에 수록된 이슈들은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살아있다>는 '기생잡지'라는 출판 형식이 너무나 독특해서, 정작 잡지의 지면에 수록된 내용 자체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갔던 것이 사실이다. 전시에 공개된 지면을 보니 타이포잔치 2013 전시 도록에 실릴 이번 이슈는 지면의 디자인과 내용에도 관심이 간다. 도록을 구입해야 할 몇 가지 이유 중의 하나. 

 

 

오베케 Åbäke <나는 아직 살아있다>(I am Still Alive) 

 

 

이유는 설명하기 어려우나, 나는 매체의 조건을 가지고 건조하게 진행되는 실험을 좋아하는데, 이러한 취향에 따라 좋게 보았던 작업이 모니커의 <디자이너를 위한 중복 영사 안내>이다. 이 작품은 예전의 인쇄매체에서 사용되던 오버프린트용 색상 테스트를 참조해 오버프로젝션용 색상을 테스트한다. 영상의 기본 색상인 R, G, B, 세 가지 색상으로 각각 사각형, 삼각형, 원이 인쇄된 포스터가 걸려 있고, 그 위에 세 가지 도형들이 다른 색상으로 프로젝션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RGB의 색상 오버프로젝션보다 더 궁금한 것은 CMYK와 RGB의 혼합이다. 포스터에 CMYK가 프린트되고 RGB가 영사되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뚜렷한 용도나 참조가 없고 이보다 덜 쿨한 작업이 되겠지만 궁금하긴 하다. (이미 누군가 잘 해둔 작업이 있을 것 같아 찾아봐야겠다.)

  

 

모니커 Moniker <디자이너를 위한 중복 영사 안내>(The Designer's Guide to Overprojection)

 

 

 

독서의 형태 (1층)

'독서의 형태' 섹션은 일부 관객에게는 가장 당혹스러운 부분이었으리라 생각되는데, 고급스럽게 마감된 웰메이드 북디자인이나, 팝업북 류의 눈을 사로잡는 재미있는 책들을 기대한 사람들이 투덜대거나 못 마땅한 표정으로 쓸쓸히 지나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 분들은 옆 방에 설치된 하마다 다케시의 작품 앞에서 표정을 회복했을 것이다. 사람마다 전시에서 즐기는 포인트는 다르게 마련이다.

     반면 독립 출판, 타이포그래피, 실험 문학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작품들이 많을텐데, 더 북 소사이어티 등을 통해 이미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작품 자체를 보기보다 어떤 책이 선택되어 전시되었는지가 관심이 갔을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책들을 좋아는 하지만 다수를 소장할 여건은 못돼는 내게는 잡지나 웹사이트에서 사진으로 보던 책들을 실물로 보는 기회가 되었다. 기사로 접했을 때는 그리 관심이 가지 않았었는데, 설명과 함께 실제로 보니 갑자기 갖고 싶어지는 책들도 있었고. 누군가는 '오타쿠'나 '마니아' 수준에서만 즐길 수 있는 정도라고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기껏해야 '빅 팬' 정도인 나와 비슷한 수준의 관객들이라도 캡션의 도움을 받으면 문제없이 즐길 수 있다.  

     그 유명하다는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 텍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어 프랙티스 포 에브리데이 라이프의 작업은 원전의 인기 탓인지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작품들 중 하나였다. 솔직히 나는 원전을 몰랐기에 설명을 듣고는 <House of Leaves> 같은 류의 책을 막연히 떠올렸다. 당연히 원전과의 비교는 불가능해서 새로운 작품 자체로만 감상해야 했는데, 맥락을 모른채 전시되어 있는 주요 펼침면들만 보아선지 여러 가지 지면 상의 시도들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앞서 언급했던 루이 뤼티의 책에서 이 작품의 디자인이 왜 비판적으로 다루어졌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될 것도 같고.



어 프랙티스 포 에브리데이 라이프 A Practice For Everyday Life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The Life and Opinions of Tristram Shandy, Gentleman)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와 같은 방에 전시된 다른 네 권의 책들은 다 멋지다. 그 중에서도 <프랑켄슈타인>은 '책의 구조적 요소를 통해 내용의 성격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더 관심이 갔다. (이 책은 내 논문 주제의 세련된 예시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책 전체를 볼 수는 없었지만 불안정하고 불편하게 제본된 형태나, 내용과 관계는 있으나 임의적 성격이 강한 사진의 연결들은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현대적이다. 

 

 

크리스토퍼 융, 토비아스 베니히 Christopher Jung and Tobias Wenig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파네트 멜리에의 <서자 전투>는 아름답게 잉크가 번진 텍스트와 펼침면 안쪽에서 번져 나오는 듯한 그라데이션으로 신비로운 지면의 광경을 보여주었다. 이런 저런 내용을 모르더라도 시각적으로 충분히 강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이 방에 전시된 책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는 듯했다. 내가 느낀 감상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파네트 멜리에 Fanette Mellier <서자 전투>(Bastard Battle)

 

 

알고 보면(?) 참여 작가들 중 가장 거물급에 속하는 영국의 존 모건은 1층과 2층 두 군데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층에는 포 코너스 패밀리어 총서 중에서 <젠다 성의 포로>와 <드라큘라>가 전시되어 있다. <젠다 성의 포로>에서는 두 명의 닮은 인물에 관한 내용이 표제용 서체를 비롯해 여러 가지 타이포그래피 디테일로 암시되고 있다. 또한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드라큘라>에서는 원작이 발간된 시기의 여러 서체들이 인물별로 사용되고, 표지의 컬러와 타이포그래피에도 초판의 디자인이 반영되어 있다. 둘 모두 고전적인 멋을 풍기면서도 대단히 현대적인(아주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책들이다.

 

 

존 모건 John Morgan <젠다 성의 포로>(The Prisoner of Zenda)와 <드라큘라>(Dracula) 

 

 

국내 북 디자이너인 전용완의 <4 6 28 75 58 47 95>도 흥미롭다. '번역'이라는 주제를 굉장히 집요하게 다룬 책으로, 이제는 비교적 익숙해진 개념적 그래픽 디자인의 문법을 군더더기 없이 따르고 있다. 내지는 물론, 표지, 제목까지 책 전반의 디자인이 언어로 납득이 되는, 임의적이거나 절충적인 부분을 찾을 수 없는 작품이다. 국내에서 이렇게 개념적인 디자인을 흐트러짐 없이 해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사실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더 대단해 보이는 것은 디자인보다 그 내용이다. 그 구성에 들어간 노력도 노력이지만, '번역'이라는 주제 자체가 주는 무게감도 있어서 '개념 기반의 디자인 작업 한 번 해봤네'하고 넘겨버릴 수 없는 작품이 되었다.


 

전용완 <4 6 28 75 58 47 95>

 

 

<4 6 28 75 58 47 95>의 맞은 편에 배치된 미코 쿠오링키의 <사물의 질서>도 비슷한 접근을 취한 작품이다. 디자이너의 컨셉에 따라 텍스트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러한데, <사물의 질서>는 텍스트와 그것의 변형된 형식이 너무 직관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바람에 좀 당연한 결과물로 보이고, 투여된 노력에 비해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이 작품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 때문에 전용완의 책이 더 돋보였던 것 같다. 

 

  

미코 쿠오링키 Mikko Kuorink <사물의 질서>(The Order of Things)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의 색깔이 너무도 확연한 요리스 크리티스와 율리 페이터르스의 책들은 탄탄한 타이포그래피와 미묘한 즐거움을 주는 디자인 아이디어가 멋지다. 하지만 책의 높은 완성도와는 별개로 WT를 스타일로 소비해버리고 난 국내 상황에서 주인공은 될 수 없어 보였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빠졌다면 섭섭했을 작품들.

 

  

요리스 크리티스, 율리 페이터르스 Joris Kritis and Julie Peeters <(잘못) 읽는 가면>((Mis)Reading Masquerades)과 <읽기/느끼기>(Reading/Feeling)

 

 

폴 강글로프의 <메아리의 책>은 실물보다 아이디어가 더 멋진 책으로 보였다. 웹사이트의 설명을 읽고 '오!' 했던 느낌만큼 강한 인상을 실제로 보면서 받지는 못했다. 특별한 읽기의 방식을 요구하는 책인만큼 실제로 읽어보면 다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강연에서 임근준 선생님의 코멘트를 들어보니 읽기가 매우 어려운 모양이다. 그래도 책의 구조적 실험으로서 훌륭한 예시임에는 틀림없다.


 

폴 강글로프 Paul Gangloff <메아리의 책>(Echo's Book)

 

 

  

언어예술로서 타이포그래피 (2층)

2층에는 검정색 병풍 형식의 아카이브 작업이 눈길을 끄는데, 폴 엘리먼이 몸짓 언어를 주제로 수년 간 수집해온 잡지 사진들이 일정한 주제별로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몸의 기술>이다. 수집된 사진의 양도 방대하고 부착된 사진들의 위치도 세심하게 고려된 흔적이 보인다. (실제로 폴 엘리먼은 전시 오픈 직전까지 이 작품의 설치에 대단한 집중력을 보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잡지 사진들이 수집된 이 아카이브 작업 <몸의 기술>에는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 크로핑된 각각의 사진들은 멋있었지만 한 곳에 그룹으로 디스플레이된 상태는 아카이브로서 너무 자연스러워 보이기만 했다. 과도하지 않은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는지 떠오르진 않았지만.

     이 아카이브가 위력을 드러낸 것은 그 옆에 전시된 책 <무제(9월호)>에서였다. 처음 방문했을 때 이 책은 아직 전시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운이 좋게도 방문 당일 막 도착한 이 책의 디스플레이를 돕게 되면서 책 전체를 훑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전시를 통해 이번에 처음으로 제작, 공개된 이 책은 디스플레이를 위해 어떤 부분을 펼쳐 보여야 할지 꽤 고민해야 했을 정도로 멋진 장면들로 가득하다. 굉장히 단순한 컨셉의 책인데, 전시에서 본 다른 어떤 책들보다 강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몸의 기술>은 이 책을 위한 과정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전시된 작품들 중 일반적인 의미의 타이포그래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작품이 지닌 힘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글자와 이미지의 싸움에서는 이미지가 이길 수 밖에 없나'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무제(9월호)>는 전시된 상태로는 관객들에게 크게 주목을 받을 것 같지 않지만, 서점에서는 큰 인기를 끌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미 더 북소사이어티에 주문을 해둔 상태다.)

 

 

폴 엘리먼 Paul Elliman <몸의 기술>(Techiques of the Body) & <무제(9월호)>(Untitled(September magazine))

 

 

이번 전시에서 일본과 중국 디자이너들의 작품은 '도쿄 TDC' 같은 전시에서 볼 법한 작품들로, 적어도 내게는 그다지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몇몇 작품들은 전시 공간을 '산뜻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는데, 오하라 다이지로의 <타이포그래비티>가 특히 그랬다. 벽에 그려진 선들이 그 앞에 모빌로 떠 있는 글자 혹은 기호와 어느 순간 결합해 특정한 글자를 이루는 아이디어는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한 가운데에 이런 작품이 배치되면 전시 공간의 분위기가 좋아진다.

 

 

오하라 다이지로 <타이포그래비티>(Typogravity)

 

 

마누엘 레더(Manuel Raeder)가 디자인한 책으로 알고 있었던 마리아나 카스티요 데바의 (마누엘 레더와 공동디자인이다.) <홀수도 짝수도 아님>은 책이라는 사물을 구조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각기 다른 주제의 가상 책 표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묶이는 이 책은, 아이디어의 특별함이라는 기준으로만 본다면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다. 웹사이트에서 발견되는 '회문'이라는 키워드는 이 책의 제목에서 온 것인 듯.


  

마리아나 카스티요 데바 Mariana Castillo Deball <홀수도 짝수도 아님>(Never Odd or Even)

 

 

윌 홀더가 1980년대 팝 가수 F. R. 데이비드의 이름과 그의 히트곡 <Words>의 후렴구를 따서 만든 독특한 형식의 매거진 <F. R. 데이비드>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책의 텍스트를 생산하는 본격적인 저자를 겸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은 별로 없지만, 한 번 구해서 보고 싶은 책이다. 이번 전시에서 전시된 상태만으로는 판단이 가장 어려운 작품들 중 하나일 것이다.

     (책 표지에 빨강, 초록, 검정 잉크만 사용하는 이유가 '사과'를 의미하는 더 '아펄' 아트센터의 아이덴티티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윌 홀더 Will Holder <F. R. 데이비드>(F. R. David)

 

 

흥미로운 국내외 소규모 출판물을 유통하는 더 북 소사이어티는 전시장의 방 하나에 그와 유사한 해외 서점들을 초대해 몇 권씩의 대표적인 책들을 소개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좋은 점은 이 곳에 비치된 책들만은 직접 만지고 통째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꽤 긴 시간을 여기 머물렀는데, 더 북소사이어티의 책들은 이미 익숙한 것들이어서 굳이 여기서 보지는 않았고, 다른 해외 서점들이 소개한 책들을 보면서 탐나는 것들이 좀 발견했다.

     그리스의 오무라는 서점에서 소개한 <로자노 툴스>라는 책과, 미국의 스탠드 업 코미디에서 소개한 <발견된 시들>, 이 두 권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로자노 툴스>는 개념미술가 리 로자노가 도구들의 섹슈얼리티를 드로잉으로 탐구한 책이고, <발견된 시들>은 팔방미인 천재 시인 베른 포터가 매스미디어 등으로부터 발견, 수집한 시적 언어들(?)을 모은 책이다. 베른 포터는 내가 하고 싶어할 법한 작업을 수십 년 전에 이미 완벽하게 끝내두셨다. 전시를 볼 수록 위시리스트만 늘어간다.

 

 

더 북소사이어티The Book Society가 초대한 오무Ommu의 책 중 <로자노 툴스>(Lozano Tools)와 스탠드 업 코미디Stand Up Comedy의 책 중 <발견된 시들>(Found Poems)

 

 

2층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존 모건이 알렉스 발지우, 장 마리 쿠랑이라는 디자이너와, 6a 아키텍츠라는 건축팀과 협업해 기획, 제작한 <블랑슈 또는 망각>이다. 25가지 테마로 분류된 400여 권의 책이 방 안을 둘러싼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압도적인 스케일이다. 사실 블랑슈 총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던 나로서는 각 테마를 이루는 분류의 방식(포함된 책의 내용 중에서 정해진 테마들)이 흥미로웠을 뿐이다. 그래픽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를 좋아하는 관객보다 글과 문학, 책 자체를 사랑하는 관객이 빠져들만한 작품이다. 이 전시를 위해 기획되고 제작된 고유한 작업이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 

 


존 모건, 알렉스 발지우, 장 마리 쿠랑, 6a 아키텍츠 John Morgan with Alex Balgiu, Jean-Marie Courant and 6a architects <블랑슈 또는 망각>(Blanche or Forgetting)

 

 

<구글 시학>은 웹에서 이미 보았던 작업으로 전시에서 특별한 감흥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작업의 아이디어 자체가 워낙에 재미있고 영리한지라, 혹시 모를까 싶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며 즐거워 했던 작품이다. 아직 모르는 분은 한 번 들러보길 권한다. 

http://www.googlepoetics.com/ 

 

 

삼프사 누오티오, 라이사 오마헤이모 Sampsa Nuotio and Raisa Omaheimo <구글 시학>(Google Poetics)

 

 

영국의 디자이너 앤서니 버릴의 목판 인쇄된 문구의 포스터들은 워낙에 유명한 작업이지만, 한 곳에 모아놓고 직접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Graphic> 포스터 이슈에 포함되었던 'You Know More Than You Think You Do'는 한 동안 벽에 붙여 두었던 포스터라 반가웠다. 일상에서 채집된 그저 그런 문장들이 시선을 끄는 원색 지면 위에서 다시 곱씹어볼 것을 권하는 가운데 '종이에 글자를 찍는다'라는 타이포그래피의 본질이 두드러지는 이 포스터들은, 인쇄물이나 글자 자체에 무작정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경쾌한 기념비로 보이기도 한다.

  

 

앤서니 버릴 Anthony Burrill <목판 인쇄 포스터 연작>(Woodblock Poster Series)

 

 

 

커버, 스토리 (2층)

문고본의 표지들을 위주로 다룬 '커버, 스토리' 섹션은 비중이 작은 편이다. 사실 현재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문고본들이 전시장에서 유효한 의미를 만들기란 어려울 것이다. 전시는 아름다운 디자인의 여섯 가지 문고본 표지들이 한 부분을 이루었는데, 대개는 타이포그래피가 뛰어난 작업이라기보다, 하나의 그룹을 이루는 문고본의 외피로서 특별한 부분을 지닌 것들이었다.

     다른 작업들보다 메타헤이븐의 안테나 총서 디자인은 좀 더 인상적이었다. 표지는 두 가지 색상의 스프레이로 그려진 듯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색상 조합과 형태는 각기 다르다. 스프레이는 메타헤이븐이 최근 몇 년 동안 주요하게 사용하고 있는 방법 중 하나인데, 여기서는 뭔지 모를 거대한 무언가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 초점이 흐려진 듯한 상황을 암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책등인데, 이 책들이 '공적으로 순환되어야 하는 지식'이라는 의미로 도서관 라벨의 형식을 차용한 것이다. 이 부분은 유광 바니시 처리되어 셀로판 테이프로 붙여진 라벨처럼 반짝인다. 

 

 

메타헤이븐 Metahaven <안테나>(Antennae)

 

 

 

무중력 글쓰기 (서울스퀘어 미디어 파사드)

서울스퀘어 미디어 파사드를 시인과 그래픽 디자이너가 협업해 시간 기반 타이포그래피로 수놓는 '무중력 글쓰기' 프로그램의 첫 번째 작품을 창 너머로 보게 됐다. 시인 박준과 워크룸의 디자이너 강경탁의 이 작품에서는 박준 시인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가 깜빡이는 커서와 함께 타이핑된다. 시를 디자이너가 타이핑으로 받아쓰듯 하는 것을 재연했다고 하는데, 컴퓨터 모니터에서였다면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았을테지만, (화면 상에서 타이핑되는 시적 텍스트는 많은 경우 장영혜중공업을 연상시키는 데에 그치고 만다.) 거리 한복판에서 거대한 스케일의 반짝이는 불빛으로 구현된 시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나같은) 전혀 다른 독자들과 완전히 다른 형태의 텍스트로 만난다.

 

 

박준 & 강경탁

 

 

14일에는 임근준 선생님의 강연이 궁금해서 다시 찾았다. 20명 정원으로 시작했던 것 같은데, 결국 150명(!) 가까운 인파가 모였다. 강연은 그 분의 다른 강연이나 책을 꽤 접했던 내게는 대부분 익숙한 내용이었으나, 이 전시를 '포스트-미디엄의 문제'와 연결지어 일종의 배경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유용했다. 물론 '포스트-미디엄의 문제'도 수년 전 <DT2>에 실렸던 내용이기는 하지만 이 전시를 보는 하나의 맥락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다시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였다. 전시에서 소개된 책들이 인터넷과 전자책 이후의 책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하게 의식해야 했을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보는 내내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졌을 정도다. 이 모든 것이 결국 그러한 상황에서 태어난 것인데 말이다. 멋진 작품들은 그러한 상황을 잠시 잊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28일에 있을 워크룸 김형진 디자이너의 강연은 현대미술의 시선으로 본 이날의 강연과는 완전히 다른, 전문 그래픽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본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궁금하고 기대가 되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포기했다.)

     기분좋게도, 마크 오언스가 디자인한 이번 전시 기념품인 <시품>이 강연 참석자들에게 선물로 제공되었다. 에코백과 메모 노트, 연필로 구성된 이 기념품 세트는 여타 전시의 기념품들과 달리 충분히 소장할 만하다.



마크 오언스 Mark Owens <시품>(Poem Objects) 

 

 

관심이 갔던 몇몇 작품들의 사진을 약간의 글과 함께 정리해 보려고 시작했던 글이었는데 결국 스크롤의 압박을 일으키는 장문의 포스팅이 되고 말았다. 이 글은 공식적인 리뷰가 아닌 그저 무명 관객의 개인적 후기로서 작성된 것으로, 순전히 개인의 취향과 느낌을 기록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훌륭한 작업이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면 그건 그저 내 관심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상당히 다양한 성향과 수준의 작품들이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각각의 작품들이 어필하는 관객층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호의 작품을 좋아할 관객도 있고, 존 모건의 작품을 좋아할 관객도 있겠으나, 그 둘이 겹칠 것이라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이 후기가 그러한 것처럼) 그냥 자신이 관심이 가는 작품들을 적당히 즐기면 그만이다.

     그래도 전시를 보러 가는 사람들에게는 웹사이트를 미리 한 번 체크할 것을 권한다. 전시된 작품들을 꼭 다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해도가 높아지면 즐길 수 있는 작품의 수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 전시의 웹사이트나 캡션이 상당히 자세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고. 캡션만 꼼꼼히 읽더라도 왠만한 작품들의 이해에는 무리가 없는, 매우 (어쩌면 너무) 친절한 전시다.

     마지막으로, '비엔날레'인 이 행사가 2년 뒤인 2015년에는 누구에 의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 올해의 전시는 만족스럽게 보았지만, 다음 번에는 이와 다른 방향의 전시가 보고 싶다. 지금까지의 세 전시가 보여준 접근과 다른, 그러면서도 더 나은 전시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의문 반, 기대 반이다.  

 

 

 

원문 작성: 2013년 9월 14일 네이버 블로그